Diego Almagro Hotel에서...
푼타에서의 일정이 하도 미뤄져서, 과거 우리차대는 어땟는지 궁금했다. 당시 우리 차대도 상당히 밀리고 밀리고 밀리고 밀렸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선발대-본대(후발대)로 나눠져 있었다. 당시 선발대-본대 모두 늦어졌었다. 정진우 형 말로는 선발대가 푼타에서 8일을 보냈다고 한다.
여하튼 놀라운 사실은 당시 25차대중 누가 언제 입남극 했는지, 아무도 페북에 적거나 하질 않았다. 당시 기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저긴데, 입출남극으로 사람이 오가는 매우 중요한 일정에 관해 아무도 페북에 올리지 않은 것은 충격적이다.18명 아무도;;; 그 당시에 관해선 페북에 기록이 없다.
반대로 우리의 입남극 2011년 12월 1일 일정과 우리가 탈출한 2012년 12월 11일의 기록은 18명중 대부분이 기록으로 남겼다.역시 우리의 입출남극이 중요했던 것이지, 남의 입출남극은 그냥 번외편 이었던 거다. 그래도 우리 후차대의 도착에 관해 기록이 없던건 나름 당시의 상황이 잘 반영된 듯 하다. 입남극 계획이 없다가 갑자기 들어왔으니;;; 우린 반대로 출남극 계획이 없다가 나간 것이었고...
여하튼 우리 25차 월동대의 18명의 페북을 다 확인하고도 못찾아서 하계대의 페북도 좀 뒤적였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26차 Jinho Jheong 의사의 페북을 뒤지고 찾아냈다. 26차 본대는 2012년 12월 7일에 세종기지에 도착... 단순히 우리가 처한 사항을 기준으로하면 내일 입남극 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25차의 출남극 일정이 12월 11일이었기에 상당히 민감하고 피말리던 시기였다.
여하튼 25차-26차대는 3일간 인계인수, 전재규 대원 추모식, 인계인수식 등 모든 공식행사를 끝내고, 2012년 12월 11일에 기지를 떠났었다. 이 출남극은 비행기가 뜰 계획이 없었다가 푼타에서 비행기가 방금 출발했고, 4시간뒤 갑자기 나갈 수 있다고 하여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2012년 12월 26일 한국에 도착했다.
당시 제 때 나온것은 분명히 월동대 일정으로 봐도 참 좋았지만, 개인물품을 실었던 하역선(당시 정기 보급선도 아예 들어오지 못했다.)이 늦어져 결국 받지 못하고 3개월 뒤 한국에서 받게된 것은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현재 27차대는 인계인수 생각하면 출남극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점에서는 참 다행으로 여겨지긴 하는데... 모 기지 안에 있는 사람입장에선 속탈듯... 충분히 이해간다.당시 우리도 그랬다. 사실 나는 아니었지만. ㅇㅎㅎㅎㅎㅎ 당시 선발대로 대기과학을 맡을 광호가 들어왔었기 때문인데, 본대로 광호가 들어왔다면 난 미쳐버렸을 것이다;;;
여하튼... 평화로운 푼타다.
이상순, 경기운, 이주영, 감호식, Jaewon Shin, 성창훈 밥들 잘 챙겨 드시며 버티고 있습니까???
# 주영아 내가 네 카드 사용해도 되냐... 돈이 다 떨어져 간다 ㅇㅎㅎㅎㅎ 카드로 현금 인출은 안되네;;;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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